“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손자 녀석만 한국대 보내 주게. 원하는 건 뭐든 해 준다 약속하지.” 수능 만점자로 한국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가정 형편으로 휴학하기로 한 하연. 나빠져만 가는 동생의 병세와 나날이 늘어 가는 병원비에 절망하는 그녀 앞에 제성 그룹 제일환 회장이 등장한다. “그럼, 심장 이식도 가능한가요?” “말해 뭘 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함세!”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자분, 한국대 꼭 입학시키겠습니다!” 그렇게 석 달을 계약하고 입주하게 된 하연. 공부만 잘 가르치면 될 줄 알았던 입주 교사 자리가 어쩐지 묘하다. 고등학생일 줄 알았는데 자신과 동갑인 학생 제해준은 더 이상하고. “대체 왜 이래요? 다 아는 문제잖아요. 이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도 잘만 풀어 놓고서 왜 자꾸 틀리는데요!” 더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똑똑한데 모의고사만 치면 영락없이 반타작 성적표를 들이미는 남자에게 분개한 어느 날,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제해준이 마침내 본성을 드러냈다. “성적 나쁜 걸 내 탓으로 돌리면 안 되지. 이하연이 잘 가르쳤으면 이런 결과 나올 리 없잖아.” “뭐라고요?” “그러니까, 동기 부여를 좀 해 주든가. 가령…… 남자 새끼들이 환장할 만한 그런 거.” “미쳤……!” “가슴 빨게 해 주면 국어 만점, 아래 빨게 해 주면 수학 만점, 두 개 다 하게 해 주면 영어까지. 어때?” “……하!” “아, 한 번 하게 해 주면 모의고사 만점 받아 줄게.” 이 인간, 몸이 아파서 외국에 있었다더니, 그게 아니라 정신이 아팠었나 보다. 그런 놈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도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난 게 분명하다고! [본문 내용 중에서] “성적 나쁜 걸 내 탓으로 돌리면 안 되지. 이하연이 잘 가르쳤으면 이런 결과 나올 리 없잖아.” “뭐라고요?” 끔찍하도록 뻔뻔하지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는지라 욕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날의 절박함을, 자신이 하려 했던 그 끔찍한 선택을! “보다시피 내가 머리 나쁜 놈은 아니라서 조금만 도와주면 그깟 한국대 일도 아닌데 말이지.” “무슨 소리예요?” 이 인간이 지금 간을 보고 있구나. 느른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을 노려보며 눈에 힘을 더 했다. 일단은 들어 봐야 했다. 정말 이대로 그만둘 순 없으니. “그러니까, 동기 부여를 좀 해 주든가. 가령…… 남자 새끼들이 좆도 못 쓸 만한 그런 거.” “미쳤……!” “가슴 빨게 해 주면 국어 만점, 보지 빨게 해 주면 수학 만점, 두 개 다 하게 해 주면 영어까지 어때?” “……하!” “아, 한 번 박게 해 주면 모의고사 만점 받아 줄게.” 듣기론 몸이 아파서 미국에 있었다던데, 아무래도 몸이 아니라 머리 쪽이 문제인 것 같았다. 아무리 돈에 팔려 온 허울뿐인 선생이라지만 그래도 스승이고 여자인데 면전에서 그런 상스러운 단어를 운운하다니! 당장에 뺨이라도 올려붙여야 하는데 더 당황스러운 건 스스로의 반응이었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좆이라는 단어에 역겨움보다 호기심을 먼저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재고의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일 뿐인데 어이없게도 마음이 흔들렸다. 순간, 가슴을 빠는 남자를, 저 잘생긴 얼굴을 더럽고 수치스러운 곳에 파묻는 제해준을 상상해 버렸다. “뭐, 원하면 사귀어도 좋아. 몸부터 주는 게 아까우면 마음부터 주든가.”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손으로 볼펜을 휘휘 돌리며 건네는 말에 순하고 맑기만 한 커다란 눈이 앙칼지게 올라붙었다. 제 회장이 말한 망나니 같은 손자 놈이 어떤 감정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스물둘 제해준은 정말로 망나니, 아니, 미쳐 날뛰는 종마 같았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하연 자신이 고삐도 없는 그 말에 자꾸만 올라타고 싶어진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