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꾼 ‘삵’은 본래 노비였다. 아비도 아닌 자가 ‘삵’의 눈깔이 꼭 삵의 것과 같다며 그리 이름을 지었다. 삵은 아비가 누군지 몰랐다. 천하디천한 관노였던 어미를 이놈 저놈 다 건드렸으니 그놈들 중 한 명이 아마 아비일 것이다. 관노의 자식이라 관노가 되었으나, 면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운이 좋아서였다. 우연찮게 알게 된 역모를 고변한 공으로 면천을 받았으며 포상금 은 열 냥도 받았다. 그러나 은 열 냥은 전부 다 빼앗겼고 그때부터 추노꾼들을 따라다니며 추노짓이나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그 여자를 만났다. 달밤에 부서지는 달빛처럼 아름다운 단영을 처음 본 것은 그녀가 어렸을 때였다. 역모를 고변하기 위해 찾아갔던 대감집의 어린 딸. 그게 단영이었다. 수년 만에 다시 만난 단영은 세자빈으로 간택을 받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장난이라도 친 걸까. 그녀의 아비가 역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하루아침에 그녀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고, 단영은 관노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아무나 건드릴 수 있는 관노로. 어느 날, 이방 강씨의 더러운 손길을 참지 못한 단영은 그를 찌르고 도망치고, 그런 그녀의 도망을 오라비가 도왔다. 그때 ‘삵’에게 일거리가 맡겨졌다. 도망친 관노 단영과 역모의 죄인인 그녀의 오라비를 잡아 오라는 일거리였다. 걸린 포상금이 많아 추노꾼들이 저마다 앞을 다퉈 그녀를 잡으려 혈안이 되었다. 삵은 이번만큼은 손을 놓았다. 제 손으로 그녀를 잡아 오기는 싫었다. 그런데 어떤 추노꾼이 그녀를 잡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도망친 관노는 잡혀 돌아오면 목이 잘린다는 생각에, 삵은 충동적으로 그답지 않은 짓을 저지른다. 늘 도망친 노비를 잡아 오던 제가, 동료의 목을 베고 그 노비와 함께 도망칠 줄은 저 또한 몰랐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냥 한 번 정도는 미친 짓을 하고 싶었다. 한 번 정도는 단영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