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 선배 결혼한대.” 우연찮게 그 말을 들었을 때 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번 동문 체육대회에서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날 태연은 11년 동안 그저 ‘아는 선배’였던 정현우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미친 듯이 섹스하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런데 정현우가 결혼한다니. 정현우와 태연의 관계는 오래되었다. 같은 동네, 그리고 같은 학교, 2년 선배. 자신이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현우는 중3이었고, 자신이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현우는 고3이었다. 생각해 보면 항상 1년은 함께 학교를 다녔다. 현우의 집은 태연의 집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고 항상 같은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자율학습이 늦게 끝나서 버스를 놓치는 날에는 걸어서 50분 걸리는 길을 함께 걸어서 돌아오곤 했다. 태연은 아직도 가끔 현우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그 버스 정거장을 떠올린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그 작은 공간 안에 앉아 있던 그때. 언제부터 자신들은 간격을 두고 긴 의자에 앉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현우는 버스 정거장 밖에 서 있고 자신은 버스 정거장 안쪽에 앉아 있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읍내에서 만나도 눈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치게 되었을까. 늘 함께 걸었지만, 한 번도 시선을 마주친 적이 없었던 오래된 아는 사이. 나이 서른 즈음에 찾아온 약간의 충동. 그리고 미련. 이건 일탈일까, 아니면 뒤늦게 깨달은 사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