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살을 타고났어.” 하씨 집안에 태어난 귀하디귀한 4대 독자의 사주를 본 무당은 그리 말했다. “독해도 보통 독한 도화살이 아니야. 아마 젊어서 칼 맞아 죽을 거야. 남의 여자를 건드려서.” 어려서부터 정숙한 행실을 가르치려고 온갖 선생들을 붙여서 노력해 봤지만, 타고난 사주는 어찌하지 못하는지 제 아들은 어려서부터 어린 계집들에게 눈길을 주더니 장성해서는 대놓고 기방을 출입하며 기녀들 치마폭에 휘감겨 사는 것이 아닌가. 신기라고는 짚신 터럭만큼도 없는 하 씨가 보기에도 제 아들은 이러다가 정말 대낮에 칼을 맞아 죽기 딱 좋겠다 싶었다. 이 4대 독자를 어찌할 수가 없어 이제 이 아들을 어디 먼 섬에 가둬 놓고 양자를 들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공망살’을 가진 처녀를 소개받은 하씨 집안의 가주. 공망살이 무엇인가. 상대방이 가진 좋은 사주까지도 전부 무력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주였다. 그 공망살을 처녀 서리가 타고 태어나는데……. 서리가 태어난 해에 그녀의 집이 망하고, 아비는 벼슬에서 잘리고, 집은 불이 나서 전부 타 버리고. 하여간에 되는 일이 없어서 일찌감치 다른 집에 양녀로 보내졌지만, 양녀로 들어간 집도 서리가 들어간 지 2년이 되지 않아 완전히 망해 서리는 오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됐다. 그러던 중에 하씨 집안으로 들어가게 된 서리는 소문의 그 도화살 충만한 사내 가진을 만나게 된다. 타고나길 음란한 호색한 가진과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망하게 만드는 처녀 서리. 가진의 도화살과 서리의 공망살. 과연 누가 누굴 누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