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혼약이 되어 있는 발레리안 공이 올해로 불혹이던가.” 천년제국을 무너뜨린 찬탈자, 북부 대공 카이든. 고요한 가운데 그의 차가운 흑안이 어린 제국의 황녀 코델리아에게로 향했다. “차라리 내 황후가 되어라. 불행하게 하지는 않겠다.” 제국을 배신한 섭정과 물러터진 선황 간의 혼약. 황가의 피를 참혹하게 짓밟고 올라선 자의 청혼. 그녀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자의 우스운 제안은 꺾였던 절개를 되살렸다. “그냥 제 목숨을 거두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말에 강인하고 거대한 육체가 몸을 일으켰다. 짐승 같은 찬탈자의 흑안이 빛나는 순간,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불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