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길어진 해가 느릿느릿 산 사이로 사라져간다. 그런데 그 석양빛이 너무나도 강렬해 눈에 온전히 박혀 들었다. “장태하 너에겐 정말 고마운 게 많아. 나도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 심장이 뻐근하게 울리는 느낌을 가르쳐준 것도, 누군가가 그리워질 수 있는 마음을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최홍.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 “네가 마음에 들어왔어.” 당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태하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는 게 보였다. 그녀는 웃었다. “널 좋아하게 됐어.” 13년 후 마스크를 고쳐 쓰던 그녀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장태하(만 30세)] 들고 있던 차트를 그대로 떨어트렸다. 서둘러 집으려는데 커다란 손이 더 빨랐다. 심장이 가슴을, 갈비뼈를 뚫을 듯이 뛴다. 향이, 그대로다. 세월이 흘렀지만 모든 게 그대로인 듯하다. “괜찮으세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들었을 때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살짝 웃고 있던 그의 눈매가 그녀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하자 그대로 굳었다. “최홍.” 차트를 들고 있던 그의 팔이 툭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손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스스로 긴장을 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깟 첫사랑이 뭐라고. “며칠이.” 고개가 절로 올라갔다. 그의 그 단 한마디가 무슨 말인지 그녀는 바로 알아챌 수가 있었다. “13년이 넘었어.” 그는 첫사랑이자, 그녀의 유일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