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주친 여섯 살 아이 고지민의 부탁. “언니만 찾으면 고아원 안 가도 되죠? 그러니까 아저씨가 우리 언니 좀 찾아주세요.” 호의로 시작한 일, 하지만 아이의 언니는 얼음마녀, 문수인.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 그런 애가 있다면 가서 똑똑히 전하세요. 꺼지라고, 좋은 말로 할 때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전해요. 알았어요?” 김기우, 얼음마녀 문수인과 천사 고지민 사이에서 길을 잃다. ***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수인의 뒤를 따라 걷던 기우는,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서자 놀라 멈춰서고 말았다. “왜?” “……고마워요.” “뭐?” “고맙다고요!” 버럭 소리를 지른 수인이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황당해진 건 기우였다. “아니, 고맙다면서 울긴 왜 울어? 이봐. 문수인 씨.” “흐흑, 전부 다 고마워요. 이 집에 머물게 해 준 것도 고맙고, 지민이 금전적으로 후원해준다는 것도 고맙고, 오늘 두 번이나 구해 준 것도 고맙다고요!” “알았어, 뭘 그렇게 화를 내면서 고마워해?” 그는 흐느끼는 수인을 어색하게 안아 주었다. 바들거리는 등을 어색하게 쓸어내리자, 수인의 울음이 더 커다래졌다. 그런데 이 여자, 왜 이렇게 말랑말랑해? 지민이보다 더 말랑하면 말랑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 큰 여자가 이렇게 보들보들하고 말랑거리는 건 범죄 아닌가? 의문이 샘솟는 사이, 수인이 꽉 막힌 코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만 좀 더듬어요.” “아니, 내가 뭘 더듬었다고 그래? 사람이 왜 이렇게 음흉해?” 그가 펄쩍 뛰자 수인이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서 벗어났다. “고마워요. 진심이에요.” “알아.” “먼저 들어갈게요.” 수인의 뒷모습은 한없이 가녀렸다. 딱 그가 좋아하는 섬세함이다. 이상하네, 왜 저렇게 예뻐 보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