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출간 20주년 기념 리커버판
일본 미스터리의 거장 다카노 가즈아키의 기념비적 데뷔작인 『13계단』이 2005년 한국어판 첫 출간 이후 20년 만에 새로운 판형과 디자인으로 단장하여 출간되었다.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 전과자와 교도관이 펼치는 재수사를 박진감 넘치게 그린 『13계단』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에 당선되어 출간된 이후 평론가와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며 유수의 미스터리 베스트 랭킹에 오르고 영화로 제작되어 일본 박스오피스를 석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오랫동안 추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치밀한 전개, 방대한 자료 조사에 기반한 디테일한 현실 묘사가 탁월한 『13계단』은 사형 제도와 현대 범죄 관리 시스템이라는 소재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사회파 추리소설의 모범으로서 퇴색되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기억을 잃은 사형수의 무죄를 밝혀라
상해 치사죄로 약 2년간 복역한 끝에 석방된 청년 미카미 준이치는 사회에 복귀하자마자 차디찬 현실에 좌절한다. 부모님은 피해자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빚더미에 올랐고, 형의 범죄로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동생은 집을 나가 홀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앞날이 막막한 준이치의 앞에 복역 시절에 그를 온정적으로 대해 줬던 교도관 난고가 찾아온다. 퇴임을 앞둔 난고는 익명의 독지가가 거액의 보상금을 걸고 제안한 일을 같이 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그 일이란, 자신의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사형수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문제의 인물은 전과자를 관리하는 보호사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기하라 료였다. 미결수로서 구치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던 그는 사건 당일 입은 외상 때문에 범행에 대한 기억이 없었는데, 근래 들어 어떤 단편적인 기억을 떠올리고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준이치와 난고는 사건의 발단부터 되짚어 나가며 료가 기억해 낸 ‘13계단’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한다.
인간은 과연 갱생할 수 있는 존재인가?
사형 제도와 현대 범죄 관리 시스템을 다룬 문제작
거의 30년간 집행 사례가 없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22년까지도 실제로 처형이 이루어지며 사형 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다. 이 작품은 전통적으로 교수대를 상징하는 13계단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선고에서 집행까지 열세 단계, 열세 명의 관료를 거치는 사형 제도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낸다. 내각 개편 같은 정치적 상황과 여론이 사형 집행에 끼치는 영향과 모호한 사면의 기준, 더 많이 살해할수록 재판과 행정 절차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고 마는 모순처럼 제도를 둘러싼 이슈를 총체적으로 짚어 나간다. 그와 동시에 사형수가 죽음을 기다리며 느끼는 공포와 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트라우마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교도관인 난고는 재직 시절 사형 집행에 임하던 순간 ‘절대 응보야말로 형벌의 근본 이념’이라는 칸트의 말을 되새기려 하지만 눈앞에서 사형수가 느끼는 섬뜩한 공포와 개개인의 갱생 여부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사례를 목격하며 제도에 회의를 느낀다. 한편으로 『13계단』은 ‘갱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개전의 정’이란 걸 정말 남이 판단할 수 있을까? 죄를 저지른 인간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겉으로 판단 가능한가?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범행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형수, 성실하게 사회에 복귀하거나 혹은 범죄의 악순환에 빠지는 전과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간과되고 있는 현실을 고찰하게 한다. 란포상 심사위원이었던 미야베 미유키는 이 책의 저변에는 “사회에 대해 어떠한 부채를 지닌 인간이 이를 짊어진 채로 사회(혹은 타인)를 위해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해설에서 밝혔다. 『13계단』은 전문 수사관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누구보다 가깝게 느끼며 살아가는 두 인물을 통해 독자와 사회에 묵직한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줄거리
상해 치사 전과자인 준이치는 교도관 난고의 도움으로 가석방되지만 생활이 막막하다. 이때 익명의 독지가가 거금의 보수를 내걸고 사형수의 무죄를 증명해 줄 사람을 구한다. 교도관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난고는 준이치를 설득하여 10년 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을 새롭게 조사하기 시작한다. 희생자는 가석방자를 보호 관찰하던 보호사 노부부였다. 범인으로 판결을 받아 사형이 확정된 료는 사건 현장 근처에서 붙잡혔으며,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 당일의 기억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오르던 계단’뿐. 사형 집행까지는 불과 3개월. 기억 속의 ‘계단’을 찾아 나선 준이치와 난고, 그러나 계단의 흔적은 사건 현장 그 어디에도 없었고, 난고와 준이치는 난관에 봉착한다. 과연 료는 무죄인가?
たかの
かずあき,高野和明 다카노 가즈아키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나 1985년부터 영화, TV 등 촬영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때 일본 영화계의 거장 오카모토 기하치 감독에게 사사했다.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LA 시티 컬리지에서 영화 연출, 촬영, 편집을 전공하다가 91년 중퇴한 뒤 귀국한다. 귀국 후 영화, TV 등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2001년에 처녀작인『13계단』으로 제47회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제 47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저서에는 『그레이브 디거』, 『K.N의 비극』, 『유령 인명 구조대』 등이 있다. 그의 데뷔작인 『13계단』은 각종 법정 참고서 등 방대한 자료들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하여 작품 전반에 극도의 현실성을 부여했던 사건 조사가 꼼꼼한 작가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이 책은 일본 추리 문단에 등장한 이후 에드가와 란포 상 최초의 만장일치 수상, 최단기간 100만부 돌파라는 신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를 씻고 선행을 통해 거듭나려는 소악당과 그의 앞길을 막는 의문의 조직, 그리고 연쇄 살인마와 경찰이 뒤얽힌 숨가쁜 24시간의 추적극이 펼쳐진다. 사형 제도의 모순과 범죄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이 작품은 사회파 작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어 당시 일본 박스 오피스를 석권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