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이 이번 소설집에서 그리고 있는 도시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이 수놓아진 곳이다. 사물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다시 공간으로, 아날로그의 긴 끈으로 골목 곳곳, 도시 곳곳을 연결하는 김중혁만의 빛나는 도시제작기. 반짝반짝 빛나는 첨단의 감수성으로 그가 새롭게 제작해낸 도시를 구석구석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읽는 이의 마음속 머릿속에도 골목길 하나가 생겨나고, 빈터가 생겨나고, 전깃줄들이 하나둘 엉켜들고, 옛집들이 자리를 잡으며 저마다의 도시가 세워진다. 처음에 깜빡깜빡 불연속적으로 점멸하던 그곳은, 마침내 한 장의 그림으로, 다시 그 속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기억에서 잠시 잊혀진 사람들이 되살아나 살아 있는 도시가 된다. 김중혁이 만들고, 우리가 만든 그 도시에서,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모든 "사이"를 들여다보며, 그 틈들을 자신만의 기억과 경험으로 다시 메우며, 정답이 아닌 새로운 질문들을 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