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벌과 북학만 남아 있던 조청 관계사의 공백을 채워라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이전 시기 청제국의 영토와 거의 동일하다. 전근대 왕조의 경계 인식과 근대 국민 국가의 국경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청에서 중국으로 고스란히 이어진 국경의 역사는 매우 독특한 연구 주제이다. 현대 ‘중국’은 과거 ‘중화’의 계승자를 자임하며 두 개념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중국은 한족과 56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만주인·한인·몽골인·위구르인·티베트인의 연합을 강조했던 청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계승했다. 이 과정에서 청제국은 역대 중화 왕조의 하나로서 현대 중국의 중화 정체성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청이 요동의 패권을 장악하기 전, 명과 여진, 그리고 조선은 모호하고 서로 섞일 수 있는 변경을 공유했다. 만주가 바로 그곳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만주는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인 동시에 청제국을 건국한 만주인의 고향이다. 이 책은 17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청과 조선의 관계 속에서 영토 인식와 경계 형성을 탐구하며, 오늘날 중국이 강조하는 ‘중화 제국으로서의 청’과는 다른 제국의 특징을 드러낸다.
청과 조선의 경계는 여러 집단이 다양한 형태로 교류하는 변경frontier에서 청이 출입을 통제하는 국경지대borderland를 거쳐 근대적 의미의 국경border으로 쉼 없이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청제국의 일방적인 동아시아 질서 구축 과정, 혹은 조선의 반청이나 실학 운동의 결과가 아니었다. 청은 조선과의 국경 문제를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자애를 내보이는 기회로 삼았고, 조선은 변경의 혼란을 이용하여 평화와 안전을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이 지역의 대표 산물인 인삼과 이를 욕망한 인간의 끝없는 발걸음이 한반도와 중원 양쪽의 변경이었던 만주를 역사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지은이는 1637년 병자호란의 결과로 구성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서 출발하여, 사대와 조공의 틀 바깥에서 청과 조선이 밀접하게 접촉하고 첨예하게 갈등하며 만들어낸 변경의 역동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 및 사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명청 시대 소금 전매 제도와 휘주 상인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듀크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청대 한중 관계사에 대한 논문으로 200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졸업 후 귀국하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계명대학교 중국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2010년부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근무한 이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청대 만주어 및 한문 사료를 강독하고 있다. 출판물로는 청 태조 누르하치 시대의 기록인 『만주실록 역주』(2014), 청 태종 홍타이지 시대의 기록인 『만문노당 태종조 역주』(2017), 한문 사료를 만주어와 대조하여 번역한 『청태종실록』(근간) 등이 있다.
최근에는 두만강 인근의 국경 도시인 훈춘에 보관되어 있던 청대 만주어 사료 『훈춘부도통아문당』을 중심으로 청대 만주의 환경사를 공부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혁신주의 시기 레드우드 보호담론 및 운동」으로 한국서양사학회 제11회 우수석사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숲의 이용과 보호를 둘러싼 근대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의 지적 교류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