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웠던 어린 시절과 상처투성이였던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경서를 반긴 건 평범마저 사치인 숨 막히는 현실이었다. 벼랑 끝에서 내려온 동아줄은 ‘출산 1년 후 이혼’이라는 조건이 걸린 계약 결혼이었고, 그녀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계약만 하면 가장 무거운 짐을 벗겨 주고, 계약을 이행하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위자료로 준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모두가 동경하던 혜준과의 결혼은 긴장과 설렘의 반복이었고, 그 안에서 움트는 낯선 감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본래 그녀가 살던 진창을 잊게 만들고, 그와의 미래를 욕심나게 했다. “우리, 이혼해요.” 계약 이행까지 짧으면 2년, 길면 3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본의 아니게 연장되었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경서는 불임 진단을 받았다. 위자료 한 푼 못 받고 이혼하게 된 것보다, 더는 혜준의 아내로 남지 못하는 게 더 아쉬웠다. 그런데 이혼을 말하는 경서에게 혜준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나한테 비밀이 하나 있는데, 이젠 너한테 말해 줄 때가 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