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여자 비명소리였어.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인 거 아니야?’ 그는 의심스러운 생각에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 정도까지 최악의 인간은 아니겠지.” 그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그의 귀에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욕실로 다가갔다. 그리고 열려진 문 틈 사이로 얼굴을 드밀었다. 샤워부스 유리벽이 뿌옇지만 샤워하는 여체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긴 머리카락, 가슴, 허리에서 이어지는 다리까지. 그는 충격으로 입이 벌어지면서 신음을 뱉었다. “하. 읍.” 그는 자신의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여자를 데리고 온 거야? 이 자식 어디 있는 거야? 하아.’ 그는 변호사로서의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업무에는 능수능란했지만 지금은 머릿속이 혼미해지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샤워 소리가 멈췄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길 잃은 강아지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곧이어 여자가 나올 거라는 생각에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출근 전까지는 내 세상이라 이거지? 아이, 그런데 이 가발 드라이기로 말려야 하나?]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의 몸이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욕실로 고개가 돌아갔다. “연……우? 아냐, 내가 잘못 짚은 걸 거야.” 그는 당장이라도 욕실로 뛰어 들어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 샤워를 끝낸 알몸의 여자 앞에 등장할 수 없었다. 욕실 문이 열리자 그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제일 가까운 한나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귀를 곤두세운 채 방문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목욕타월로 몸을 감싼 여인이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문지르면서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참.” 여자는 몸을 돌려 욕실로 다시 들어가 가발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눈, 코, 입을 확인한 순간 그는 연우라는 걸 깨달았다. “여자였어. 여자였어. 그럼, 왜? 그런 거짓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