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 부인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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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이집트 여행을 다녀온 서른 살 즈음의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글쓰기에 매진했고, 고된 작업 끝에 1856년 마침내 최종 원고를 탈고했다. 이 원고는 친구의 소개로 잡지 《파리 평론》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작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풍속과 도덕, 종교를 모독하는 내용이라는 반발이 뒤따랐다.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기소까지 당했다. 《보바리 부인》이 당대에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보바리 부인》은 빈틈없는 조사와 치밀하고 정확한 연구, 무수히 다듬은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자, 주관을 배제한 채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플로베르의 사실주의적 지향이 가장 찬란하게 꽃피운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가여운 보바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프랑스의 스무 개 마을에서 괴로워하며 눈물짓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는 단지 엠마를 비난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고까지 말하며 엠마라는 인물과 그 인물이 놓인 환경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방대한 그림을 그려냈다.

About the author

Gustave Flaubert, 1821~1880 1821년, 아버지가 외과 부장으로 있던 프랑스 루앙의 시립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주로 병원에서 보내며 염세적 사고를 형성했다. 한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셰익스피어 작품을 자주 읽으며 해학의 정신을 익혔다고도 전해진다. 염세주의와 해학 정신은 플로베르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두 축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우울한 경향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광기와 자살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으로 성장해 여러 습작을 했다.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낙제했고, 1844년 간질로 추정되는 신경 발작이 발생하자 학업을 그만두고 루앙으로 돌아와 요양하며 집필에 전념했다. 《보바리 부인》은 1851년에 쓰기 시작해 하루에 열두 시간씩 집필한 끝에 1856년에 완성한 대작으로 출간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몇몇 장면이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했으나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문학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함께 누리며 《살람보》, 《감정 교육》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1880년 5월, 미완의 원고를 책상에 남긴 채 뇌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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