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소설들은 억압과 차별의 시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찾는 여성주의 문학과, 이른바 386세대의 피끓는 투쟁의 현장과 소외받는 노동자와 장기수 들의 삶을 그린 후일담 문학으로 대별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결국 무의미해지는 듯한데, 첫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 뒤에 가려진 소시민의식, 소외계층의 현실에 밀착하는 작가정신이 한결같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작가의 이후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지형도나 다름없다.
작가 자신의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위장취업하여 노동현장에 투신한 여대생의 이야기를 다룬 등단작 「동트는 새벽」, 그 후속편이라 해도 무방한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지주의 아들과 머슴이 일용노동자와 기업가로 처지가 바뀐 채 만나는 이야기를 쓴 「잃어버린 보석」은 표제작 「인간에 대한 예의」와 더불어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문제에 방점을 찍는다. 한편 순박한 처녀가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남자의 성적 방종 때문에 자살에 이르는 이야기를 쓴 「사랑하는 당신께」에는 공지영 특유의 여성주의가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균형감 있게 그려졌고, 주어진 조건과 그에 맞선 여성의 대결이 문제시되는 「절망을 건너는 법」에서는 피폐한 농촌의 현실에 대한 꼼꼼한 취재의 결과물들이 눈에 띈다.
「개정판을 내면서」에서, “소설가로 산 20여년은 내 인생의 격랑이 소용돌이치는 나날들이었다. 그와 함께 나의 나라도 된통 몸살을 앓았다. 나는 그동안 모든 고통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는 작가의 고백은 마치 다시 거울 앞에 선 성숙한 누이의 한마디처럼 들린다. 이제 명실공히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공지영의 이 첫 소설집에 담긴 풋풋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과 고민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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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세상의 변화와 여성의 현실을 투시하는 섬세한 문학적 감성과 속도감 있는 문체로 주목받아왔다.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등을 출간했다.